'아시아 의료허브' 성패, 차별화·상품 특화에 달렸다
전문인력·시설 관광휴양자원 등 타 시·도에 비해 장점 많아
첨단진료체계·가격 경쟁력도 선도국인 싱가포르보다 우위
여러 전문 병·의원 함께 뭉쳐 지역의료 장점 활용 브랜드화
공동 홍보·해외환자 유치 나서야
한류·국제행사 등 활용도 필요


세계화 시대 고부가 성장 산업인 관광은 이제 자연환경만을 자원으로 삼던 패턴에서 벗어나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 진화의 정점으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의료관광이다. 외국인 환자를 유치, 치료하고 환자 당사자나 그 가족을 대상으로 관광을 겸하는 잠재력 높은 산업이다. 태국과 싱가포르는 한해 각각 140만 명(2006년)과 50만 명(2008년)에 달하는 의료관광객을 유치해 부를 창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금까지 금지해 왔던 외국인 환자 유치·알선 행위를 허용하는 개정 의료법이 지난 1일부터 시행됐다. 이전에도 부분적으로 외국인 환자 진료가 이뤄졌지만, 이번에 법제화를 통해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것은 우리도 본격 의료관광 시대를 열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미 대구는 2007년부터 '의료특별시 메디시티 대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의료관광과 의료서비스산업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서울, 제주도, 경기도 등도 의료관광 허브를 지향하며 속도를 내는 가운데 부산도 그 대열에 뛰어들었다. 관건은 시장 선점과 경쟁력 우위를 점하기 위해 부산이 어떤 차별화 전략으로 '부산만의 의료관광 브랜드'를 만들어 나가느냐이다.


■국내 각 지자체 동향과 시사점

 
섬유산업 고전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대구는 돌파구로 의료관광을 선택했다. 2년 전 세계적인 기술을 자랑하는 경북대병원의 모발이식과 치열교정, 350년 역사의 약령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양·한방협진을 경주, 안동 등 관광자원과 묶어 선도적으로 치고 나갔다. 그 결과 지난해 3만1000여 명의 외국 의료보험 환자와 1300명의 입국 외국인 의료관광객을 유치했다.

대구의 홍보, 마케팅 전략은 참고할 만하다. 한국주재 외국인을 통한 해외 인적네트워크 활용, 해외 한국기업들의 현지 영업활동과 연계, 해외 의료봉사 활동을 통한 네트워크 구축 , 유력 외국인 환자 무료 유치 및 시술을 통한 현지 홍보 강화가 돋보인다. 또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대상으로 팸-메디 투어를 실시하고, 해외 언론사를 초청해 체험사례를 자국에서 방영하도록 한 것도 의료관광이 궤도에 오른 원동력이 됐다.

제주도는 지난달 의료관광 실태 확인차 제주도를 방문한 중국보건협회 국제교류부 공무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천혜의 자연환경과 중국인 무비자 입국 등 특례조항을 집중 홍보, 의료관광 시장 선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제주도는 정형, 미용 의료관광의 최적지로 꼽고 연간 3000명 이상의 중국의료관광단을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경기도는 임플란트와 성형, 피부관리, 종합검진 전문병원을 쇼핑과 접목시키고 있다. 지난해 2만2000명의 외국인 환자를 유치해 전국 최고를 기록한 가평 청심국제병원과 세계문화유산인 화성 등을 자원으로 활용해 우위를 점한다는 것이다. 서울은 아산병원, 삼성병원, 강남성모병원 등 빅5 의료기관이 최고, 최첨단 의료서비스를 내세워 각개약진에 들어갔다.

■인지도 제고, 공격적 마케팅을


2010년 세계 의료관광객 수가 4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의료관광 선도국인 태국과 인도는 가격 우위를, 싱가포르는 고품질로 승부를 걸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1년까지 10만 명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관광공사가 올해 초 국내외 의료관광 경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용 성형 한방 건강검진 척추 항목이 경쟁력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외적으로 경쟁해야 하는 구도 속에서 부산은 과연 '아시아 의료허브' 비전 달성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똑같은 컨셉은 의미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이다.

인제대 이기효 보건대학원장은 최근 부산시 의료관광 발전 전략 세미나에서 충분한 의료인력과 시설, 일본 러시아 중국 대도시와 인접, 온화한 기후와 관광 휴양자원을 부산의 경쟁력으로 꼽았다. 여기에 전문가들은 로봇수술, 신장이식, 불임, 척추 등과 같은 전문진료와 싱가포르보다 유리한 가격 경쟁력도 장점에 포함시킨다.

이를 기반으로 의료관광의 형태에 어떻게 맞춤 대응하느냐가 숙제라는 지적이다. 목적이 뭐냐에 따라 외국인 의료관광 형태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먼저 미용성형, 피부관리 등 가벼운 의료와 스파·휴양·한방을 겸한 경증 관광형이다. 중병 진료와 수술을 위한 순수 치료여행도 한 형태이다. 중간형도 고려해야 하는데 일단 와서 건강검진을 받아보고 치료를 결정하는 그룹이다.

우선은 시장 잠재력과 수요 확대 등을 감안해 경증 의료관광에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3차 대학병원급부터 1차 병원까지 각자 특화 분야를 내세워 공동 대응하는 게 궁극적으로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한국국제의료서비스협의회 서우영(좋은강안병원 과장) 부회장은 "3차 병원은 고도기술로 수도권 대형 병원과 경쟁하면서 중증을 맡고 2,1차 병원은 독자적인 전문영역으로 함께 나가는 전략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렇게 부산 전체가 움직여 일단 외국인 환자를 부산으로 유도하고 나서 환자 이송 시스템 체계화로 윈윈 전략을 펴야 파이를 키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외국인 환자 유치에 필요한 절차를 병원 혼자서 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따라서 여러 병원이 모여 수익자 부담으로 공동 홍보와 마케팅을 수행하는 방안이 절실하다. 그래야 의료관광을 뒷받침할 제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료분쟁 조정이나 중재에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부산은 의료관광 상품 홍보와 마케팅 측면에서 타 시도보다 확실하게 비교우위에 있는 것이 있다. 항만을 이용한 크루즈와 연중 활발하게 열리는 국제 컨벤션행사이다. 이를 '한류'와 연계해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한국관광공사 등이 후원하는 '2009 대한민국 글로벌 의료마케팅 대상'의 여성 요실금 및 성기성형 분야 병원으로 선정된 해운대혜성병원 권헌영 의무원장은 "지금도 지역 환자를 빼앗기는 상황에서 자칫하면 의료관광의 과실도 서울 대형 병원에 내줄 수 있다"며 "국제적 수준에 올라와 있는 부산의료의 인지도를 높여 나가면서 월드 베스트 진료 발굴과 공격적 브랜드 마케팅으로 혁신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일부 지역병원 발빠른 대응 '결실'

이미 2,3년 전부터 독자적으로 외국인 환자를 유치, 성과를 거두는 병원도 있어 의료관광을 실행하는 데 좋은 참고 모델이 되고 있다.

지난달 중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현지 여행사 대표와 캄차카에서 사업 하는 남성 2명이 부인 등과 함께 좋은강안병원을 찾았다. 이들은 각각 신장결석과 식도암이 있는 환자. 여행사 대표는 강안병원에서 쇄석술 시술을, 식도암 사업가는 이 병원의 주선으로 동아대병원에서 로봇수술을 받았다. 환자 가족들은 체류기간 동안 종합검진과 재래시장 등을 쇼핑했다. 좋은강안병원 서우영 진단검사의학과장은 "캄차카에선 부산 의료수준이 소문나 있으며 블라디보스토크도 싱가포르로 보내던 환자를 부산으로 돌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 병원은 2년반 전부터 의료관광을 준비하면서 부산 거주 외국인 근로자, 학생, 사업가, 무역상사 직원을 상대로 홍보·무료 진료와 만족도 조사 등을 통해 입소문을 냈다. 또 환자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피드백하면서 신뢰를 구축했다. 서 과장은 "의료관광 1 차 타깃은 러시아 중국 일본 몽골인데 특히 러시아 사람들은 부산 의료와 기후 등을 더욱 선호한다"고 평가했다.

남성불임 치료 전문병원인 세화병원은 지난 2005년 비뇨기과학회 참석차 한국에 온 러시아 사할린 기네스병원의 에레나 원장과 인연이 닿은 것이 계기가 됐다. 그해 9월 기네스병원과 기술제공 협정을 체결해 시험관아기 시술이 필요한 사할린, 블라디보스토크 등 극동지역 불임 환자를 유치했다. 평균 2개월 정도의 체류기간을 통해 믿음을 심었고, 시험관아기에 성공해 돌아간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방문 환자 수가 매년 늘고 있다.

세화병원은 2006년 8월엔 칭다오 제청병원과도 남성불임 치료 협약을 맺어 의료진 상호 방문 등을 통해 환자를 유치하고 있다. 병원 측은 비자발급, 출입국, 통역 등 환자 편의에 만전을 기하며 서비스 질을 향상시켰다. 이상찬 원장은 "문화와 언어 등이 다른 타 국가의 환자를 유치하는 데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상호 신뢰"라면서 "교류, 왕래를 통해 의료정보를 교환하고 믿음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해외시장 개척 선결 과제"라고 지적했다.


출처 - 국제신문 2009년 5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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