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질의 의료·시설 갖추고 의료진 2~3개 국어로 소통
우수한 의료진 확보는 필수사항, 쾌적한 시설 등 고객 편의 최우선
한 병원에 분야별 전문의 클리닉, 검사장비·수술실 등은 공동사용
환자 안전사고 예방시스템 가동, 전문의 협진 통한 팀워크 뛰어나
외국인 환자와의 대화 장애 없어, 첨단 의료장비 투자에도 적극적


동남아시아의 의료 허브로 자리잡은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베트남 등 인근 국가는 물론 영국과 호주 등지에서 많은 외국인 환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의료 허브 싱가포르'를 만든 것은 무엇보다 수준 높은 의료의 질이다.

■중요한 것은 의료의 질

싱가포르의 중심지인 오차드(orchard) 거리에 위치한 글랜이글스(Gleneagles)병원은 외국인 환자들이 많이 찾는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민간병원이다. 마운트 엘리자베스병원, 이스트 쇼어병원과 함께 보건의료그룹인 파크웨이그룹 산하 3개 병원 중 하나다. 휴양지의 테라스를 연상시키는 병원 입구에는 푸른 눈의 서양인은 물론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온 듯한 환자들이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메디컬 트래블'(medical travel)과 '메디컬 투어'(medical tour)는 구분해야 합니다."

이 병원 마케팅 부사장인 사무엘 탕 씨는 "전자는 치료가 우선되는 개념이고, 후자는 관광과 치료를 거의 같은 비중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탕 부사장은 "메디컬 트래블이나 메디컬 투어나 핵심은 의료의 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글랜이글스병원을 비롯한 파크웨이그룹은 환자의 치료와 안전, 편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관광과 쇼핑은 증세가 호전된 이후의 일"이라고 말했다. 의료의 질이 최우선이라는 것이다.

 
 
본격적인 의료관광 시대를 맞아 부산 부산진구 서면 메디컬 스트리트 등 부산지역 의료계는 성형과 미용, 건강검진 등 비교적 가벼운 선택 진료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치료와 관광, 쇼핑이 결합된 메디컬 투어가 일차적 목표가 될 전망이지만 의료의 질이 우선이라는 탕 부사장의 이야기는 새겨 들을 만하다. 병원 운영의 최우선 과제는 의료의 질과 환자의 편의 향상이라는 점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 중심에 JCI(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 인증이 있다. 탕 부사장은 "JCI 인증은 환자의 안전과 편의를 만족시키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글랜이글스병원 의료진은 투약 전에 환자의 이름을 두 번 이상 불러서 확인한다. 탕 부사장은 "가장 많은 사고는 투약 부문에서 일어난다. 투약 시 환자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글랜이글스병원과 국립병원(General Hospital)의 가장 큰 차이다.

싱가포르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이은호 씨는 "국립병원에 비해 영리병원의 진료비가 비싸지만 의료 수준이 높고 시설이 쾌적하기 때문에 싱가포르 국내는 물론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의 부유층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수 의료진 확보도 필수적인 부문이다. 308병상을 보유한 글랜이글스병원은 개인병원의 집합체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각 분야의 전문의가 병원 내에 클리닉을 개설하고 입원실과 검사장비, 수술실 등을 공동으로 사용한다. 병원에서 강점으로 내세우는 간 이식이나 심장, 암 분야에는 별도의 상주 전문의가 고용돼 있다. 파크웨이그룹 산하 3개 병원에는 337명의 상주 전문의와 1100명의 개방병원의사, 30명의 심장 전문의가 진료를 맡고 있다.

탕 부사장은 "국립병원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전문의를 고용한다. 무엇보다도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담보하기 위해 경험이 많은 의사를 중시한다"고 말했다.

■JCI 인증 시스템 철저히 적용

싱가포르의 또다른 민간병원인 래플즈(Raffles)병원의 최우선 운영 원칙 역시 글랜이글스병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병원의 마케팅 부문 책임자인 제이슨 얍 박사는 "JCI 인증은 세계적인 기준"이라면서 "의료의 질 향상은 JCI 인증을 위한 노력 속에 자연스럽게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병원 내 감염이나 투약 사고 같은 '병원 내 사고'는 JCI 인증을 통해 검증받은 시스템이 사전에 철저하게 방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래플즈병원은 환자가 침대에서 떨어지는 낙상 사고가 발생할 경우 내부 리포트를 통해 반복적인 사고 방지에 힘쓰고 있다.

샴쌍둥이 분리 수술 등 전문 진료 분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 병원도 우수한 의료진을 보유하고 있다. 의사 대다수가 싱가포르 국립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의 존스 홉킨스병원 등 해외 유명 병원에서 6~7년간 수련을 마친 전문의들이라는 것이 병원 측의 설명이다. 얍 박사는 "35개 진료분야에 380여 명의 전문의가 있다. 래플즈의 강점은 협진을 통한 팀워크"라고 소개했다.

래플즈병원에서 만난 인도네시아인 우데아 씨는 "싱가포르가 다른 나라이기는 하지만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진과의 의사 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 진료를 받는 동안 편안했다. 몸은 싱가포르에 있지만 마음은 인도네시아 본국에 있는 느낌"이라고 칭찬했다.

■언어적 장벽 극복

우데아 씨 말처럼 싱가포르 병원들이 가지는 강점은 환자와의 언어적 장벽이 없는 점이다. 이는 국내 의료계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장벽이다.

영어와 중국어, 말레이시아어 등을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싱가포르에서는 의대를 졸업할 정도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영어를 포함해 2~3개국 언어 구사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때문에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영국 등 외국인 환자와의 소통에 아무런 장애가 없는 것이다.

첨단 의료장비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글랜이글스병원 탕 부사장은 "최신 기술을 수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진료 비용은 다소 올라갈 수 있지만 과거보다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장기적으로 보면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 글랜이글스·래플즈병원

- 화려한 인테리어 즐비한 편의시설 호텔 온 듯 착각

영리병원인 싱가포르의 병원들은 환자들을 위한 인테리어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글랜이글스병원과 래플즈병원 로비에 들어서면 병원 특유의 느낌은 온데간데 없다. 가운을 걸친 의사나 간호사의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환자나 대기자들을 위한 편의 시설이다.

글랜이글스병원 1층 로비에는 간단한 음료와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식당이 눈에 띈다. 진료 예약 창구는 백화점의 고객 대기실처럼 로비 한 편에 안이 들여다 보이는 통유리로 단정하게 자리잡고 있다.

래플즈병원 로비도 고급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글랜이글스병원보다 더 큰 규모의 식당과 건강식품 판매점이 들어서 있어 병원보다는 백화점이나 호텔 로비 같은 인상을 준다. 외식을 주로하는 현지 특성상 병원 환자나 가족 뿐만 아니라 행인들도 들어와서 식사를 하거나 음료를 마시는 모습이 쉽게 눈에 뛴다.

글랜이글스병원 4~10층 병동 복도에는 고급스런 카페트가 깔려 있고 벽지도 화사한 색깔이다. 글랜이글스병원 마케팅 부사장인 사무엘 탕은 "궁극적으로 6성급 호텔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1인 병실의 모습은 웬만한 호텔 객실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벽 내부에 장식된 벽걸이 TV에, 화사한 느낌의 카페트, 환자 보호자를 위한 세련된 소파와 에어컨까지.

래플즈병원도 이에 버금가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지만 창 밖으로 보이는 병원의 외관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병원 주변을 둘러싼 다양한 열대 나무들과 흰색 건물이 조화를 이뤄 환자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있다.


▶JCI(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인증

미국이 자국 환자의 안전과 의료의 질 향상을 담보하기 위해 1997년에 마련한 국제적인 기준. JCI 인증은 입원에서 퇴원까지의 전 진료 과정을 평가한다. 현재 세계 35개국 211개 병원에서 JCI 인증을 획득했으며, 국내에서는 연세 세브란스병원이 유일하다. 본격적인 의료관광 시행을 맞아 부산지역에서도 인제대 백병원이 JCI 인증 지원센터를 마련하는 등 많은 병원들이 인증 획득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323개 기준, 1192개 항목을 평가하며, 매 3년마다 재인증을 받아야 한다.

출처 - 국제신문 5월11일 윤정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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