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빨대'에 지역의료계 초토화



지역 환자의 역외유출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2004년 KTX 개통이후 '부산지역 환자 30만명이 서울로 빠져나간다'며 대략적인 추정치로 언급된 적이 있지만 구체적인 수치가 발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부산지역에서 서울로 유출된 환자는 이전까지 알려진 환자 유출 수보다 훨씬 많은 연 62만3천명으로 집계됐다. 부산지역 역외유출 환자수는 2007년에는 전년도에 비해 20.2%, 2008년에는 10.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 가족 부대비용 포함 천문학적 액수
당뇨·고혈압 등 만성질환자까지 서울행
의료전달체계 붕괴 방지 대응책 수립을


내년 연말에 KTX 부산~대구 구간이 완전 개통돼 서울까지 2시간 10분대로 줄어들게 되면 역외로 빠져나가는 환자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미 KTX 영향권에 들어가 있는 충청 대전권과 경북권은 초토화 위기에 몰려 있는 상태다.

부산시민이 부산지역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역내 이용률(총진료비 기준)은 지난 2008년 86.1%로 전국 시도에서 가장 상위에 위치하고 있다. 반면에 충남은 전국 시도 가운데 최저인 60.8%, 충북은 68.5%, 경북은 62.2%로 나타났다. 대도시 지역은 대구 85.3%, 광주 76.6%, 대전 78.4%, 경기 65.5% 수준이었다. KTX가 완전개통되면 부산도 상황이 점점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환자 유출에 따른 진료비도 엄청나다. 서울로 빠져나간 입원 환자의 총 진료비는 494억 6천만원(총 1만 6천명 추정)으로 1인당 진료비는 309만원에 이른다. 서울로 유출된 외래 환자의 총 진료비는 271억 2천만원으로 1인당 진료비는 4만3천500원 수준이다.

부산 환자가 서울로 빠져나가면서 유출되는 총진료비 765억원은 단순 추정치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 입원 환자가 서울로 가면서 환자 가족들이 1~3명이 함께 따라가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산출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나다. 이들이 평균 10일 가량 서울에서 먹고 자면서 쓰는 비용 역시 지역재정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오고 있다.

서울 소재 의료기관의 총 진료수입은 6조 9천399억원으로 이중 36.2%인 2조 5천111억원이 지방 환자들로부터 벌어들인 역외 진료수입으로 확인됐다. 2년전인 2006년의 역외 진료수입액인 1조 8천 671억원에 비해 34.5%가 증가한 수치다.

특히 서울의 빅4 병원에서 진료일수가 가장 많은 질환은 '암'이었다. 두번째와 세번째가 각각 '당뇨병'과 '고혈압'으로 중소병원 이하에서 잘 관리를 받을 수 있는 만성질환이었으며 특히 다섯번째로 이용빈도가 많은 질환은 '감기'로 파악됐다. 동네 병의원에서 관리할 수 있는 질환들까지 서울의 대형병원들이 싹쓸이를 하고 있는 것이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인제대 보건행정학과 강성홍 교수는 "수도권 쏠림 현상이 의료 질의 차이에 의한 것인지 서울지역 대형병원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때문인지를 분석하기 위해선 의료 이용자들의 실태조사를 벌일 필요가 있다"며 "그 결과에 따라 지역 의료기관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과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도권 쏠림 현상은 국가 전체적으로 막대한 재정 낭비를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수도권 병원은 지역 환자가 몰려들어 매년 병상을 증설하는 실정인 반면 지역의 병의원은 환자가 줄어 경영난에 허덕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병원경영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100병상 미만의 중소병원 도산율은 9.3%에 이르렀다. KTX 개통이 빨대 역할을 하면서 지역의 중소병원들이 고사위기에 몰리고 있다는 우려는 점점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 재정의 막대한 손실도 문제다. 진료비의 유출은 외래환자와 입원환자를 합쳐 총 765억 8천만원이다. 하지만 환자 1명당 가족들이 1~3명이 따라 가고 문병을 가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 평균 10일 내지는 길게는 1개월 가량 서울에 머물면서 쓰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부산대병원 박남철 병원장은 "지역 환자의 역외유출은 의료전달체계의 붕괴를 가져오고 의료 외적인 추가비용이 발생하는 등 정치 사회적으로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어 개선책이 마련돼야 한다. 아울러 저평가되어 있는 지역 의료기관의 우수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대책도 수립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산일보 - 김병군 기자 gun39@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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